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전설적 카피’의 수상한 출처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전설적 카피’의 수상한 출처
우울증을 두고 ‘마음의 감기’라고 한다. 마음이 편해지는 서정적 표현이다.
간소하고 시적인 표현을 보면서 정신과 치료를 미뤄왔던 사람들은 결심한다.
그래, 감기 걸렸을 때 감기약 먹는 것과 뭐가 달라…? 병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고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등 항우울제 복용을 시작한다.
이 자연스러운 과정에 제약회사의 ‘마케팅적 음모’가 깊이 개입돼 있다고, ‘우울증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사월의책)의 저자 기타나카 준코 교수는 주장한다.
“푸로작? 그 약이 팔리겠어요?”
저자는 ‘일본에서 우울증의 탄생’(책의 부제다!)을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사람들은 ‘우울증’이란 질환에 관심이 없었다.
전설적인 항우울제 푸로작을 들고 일본 의료 시장에 뛰어들려 하던 다국적 제약사 일라이 릴리를 정신과 의사들이 나서서 설득했을 정도다.
“일본에선 시장성이 없다. 푸로작의 홍보와 판매를 진행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한다. 일본 사회 전체가 적극적 정신과 진료와 복약을 통한 ‘우울증 치료’ 쪽으로 급격히 돌아선다.
이 과정에서 항우울제 판매를 위한 제약회사의 ‘언어 변경’ 시도가 이뤄졌다는 게 기타나카 교수의 분석이다.
그때 제약업계가 사용한 ‘언어’가 바로 ‘마음의 감기’다. 기타나카 교수의 설명이다.
“제약회사들은 우울증에 보다 긍정적인 함의를 부여하기 위해 ‘마음의 감기’ 또는 ‘감기에 걸린 영혼’이라는 문구를 채택했다.”
수많은 자국민이 ‘감기에 걸린 영혼’이 되는 상황을 보며 일본 의사들은 반발했다.
“SSRI가 도입돼 광범위하게 처방이 이루어지던 2000년 이후에도 많은 일본 정신과 교수들은
우울증의 급격한 증가가 ‘제약회사의 음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우울증 치료가 시작된 20세기와 21세기는 질적으로 다른 사회다
사람들이 겪는 우울의 강도는 심화했고, 약물을 통한 치료도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교화하고 있다.
저자도 “‘우울증’을 통해 누구나 마음에도 병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됨으로써,
그동안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던 사람들의 고통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가 비판하는 ‘푸로작에 관한 서사’에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푸로작으로 대표되는 항우울제의 현대판 성공 신화가, 인간을 ‘신경화학적 자아’로 단순화시키고 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우울증은 뇌 질환이기도 하지만, 태생부터 사회적 원인을 품은 게 사실 아닌가.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상기시키듯 “정신장애는 삶의 괴로움의 표현이자 증명이고, 삶의 괴로움은 사회구조에서 생겨난다.”